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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 개성과 한양으로 가는 길목을 차지한 주인공은(하)晴境(청경) 金善喆(김선철)

<이전호 계속> 대부도 연안은 우리나라 수도(首都)의 엄마 품에 해당하는 중부해역에 위치해 동아시아의 운명을 좌우한 커다란 전쟁이 많았다.
역사상 전쟁이 가장 많았던 삼국시대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각축을 벌인 당황성은 군사 충돌과 전략적 중심지로 제21대 개로왕까지는 백제, 475년 장수왕 때는 고구려, 551년 성왕 때는 백제에 속했다가, 553년에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660년 6월 소정방 군대는 덕적도에 도착해 29대 김춘추의 장남 김법민(문무왕) 신라군과 합류했다. 나당연합군의 덕적도 상륙은 백제 멸망의 원인이 되고 삼국 통일의 전환점이 되었다.
고려 고종 18년(1231년) 원나라가 침입한다. 고려의 장기항전으로 강화도는 39년간 고려의 수도였으나 1270년 원종이 개경 환도를 명령하면서 삼별초가 혁파되었다. 삼별초는 1270년 6월 3일 1,000여 척의 배를 타고 남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다음 해 2월 착량(窄梁)의 몽골 병사들이 대부도에 들어와 침탈하자 개경 관노비들의 봉기 소식을 듣고 몽골군을 처단하였다.
조선말 프랑스 신부 9명과 신자 8천여 명이 병인박해로 희생되자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공한 병인양요가 일어난다. 1871년에는 1866년 대동강에서 불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침공한 신미양요가 있었고, 두 양요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의 계기가 되었다.
임오군란은 고종 19년(1882년) 7월 23일 군납비리를 저지른 민겸호, 민비(1897년 이후 명성황후)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어난 난(亂)이다. 그해 8월 10일 정여창의 북양함대 3척에 병력 4~500명이 제물포에 도착했다. 이틀 후에는 일본군함 4척과 대대 병력 300명이 제물포에 상륙하고, 청나라 오장경(吳長慶)은 청군 3,000명과 마산포에 상륙한다. 26일 대원군을 강제로 남양만으로 압송·납치한다.
1894년 2월 발생한 동학농민운동 때 청군을 요청했고, 1894년 7월 25일 풍도해전이 일어났다. 일본해군의 순양함 요시노(吉野)와 아키쓰시마(秋津洲), 나니와((浪速) 3척과 청나라 제원(済遠), 광을(広乙), 조강(操江), 상선 고승(高陞) 간의 해전으로 일본이 완승했다.
1904년 2월 8~9일에는 방아머리 앞 팔미도 근해에서 제물포 해전이 발발했다. 제물포 해전은 1904년 2월 9일(러시아 기준 2월 8일) 대한제국의 제물포 앞바다에서 발발한 러일전쟁의 첫 해전이다. 일본 순양함 6척, 어뢰정 8척과 러시아의 제물포와 여순항의 제1태평양 함대 소속 바랴크(Varyag)와 코레예츠(Koreets) 간의 해전에서 일본이 완승했다. 그 후 2월 12일 대한제국과 러시아의 국교가 단절되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261척의 함정과 75,0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된 대규모 작전이었다. 이 작전으로 북한군 보급로를 차단하여 낙동강 전선의 유엔군이 반격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와 같이 대부도 인근 연안에서 일어난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시대의 당황성 쟁탈전, 660년의 나당연합군, 1270년 고려의 개경환도와 삼별초의 남쪽 이동, 1271년의 대부도 몽고군 살해, 1894년 풍도해전으로 시작된 청일전쟁, 1904년 제물포해전으로 시작된 러일전쟁, 6.25전쟁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 등이 일어날 때마다 해역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그 이유는 국력이 약하여 우리의 바다를 스스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해군 2함대가 서해안을 굳게 지키고, 대한민국이 세계 6대 군사강국으로 도약하여 대부도 주변 해역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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