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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르고, 대부도는 역사의 주인공이었나?(하)晴境(청경) 金善喆(김선철)남북 주민 간 화합과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마련

<전호에서 계속> 일제강점기 1914년 부·군·면 행정구역 개편 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도 잠시, 미소 강대국에 의해 38선이 그어지면서 옹진반도의 대부분과 장연군의 백령도, 벽성군의 대연평도, 옹진군의 기린도 등이 경기도 옹진군과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휴전으로 옹진반도가 북한령이 되면서 서해 5도인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인근 섬만 부천군에 남게 되었다. 황해도 옹진군과 경기도 부천군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때 부천군청은 1940년대 개항장 지역인 인천 욱정(현재 답동)에 있었고, 6.25 당시 옹진군청을 부천군청 내에 설치하였다. 1962년 군청을 소사읍으로 이전하여 도서지역인 대부도 주민들은 군청을 가려면 인천항에서 다시 소사까지 가야했으므로 어려움이 많았다.
1973년 소사읍이 현재의 부천시로 승격하면서 1914년에 급조된 부천군은 없어진다. 오갈 데 없게 된 대부면, 영종면, 덕적면 등의 도서 지역은 전부 옹진군에 편입되어 백령도와 연평도 주변의 두 개 면만 남아있던 옹진군이 커진다. 그 후 1989년 옹진군의 영종과 용유면이 인천에 편입된다. 이어서 1995년 행정과 생활권이 인천과 얽혀있는 옹진, 강화, 김포 검단도 주민투표로 인천에 편입되면서 옹진군의 대부면만 경기도에 남는다. 인천직할시는 농어촌 군·면 지역이 편입되면서 인천광역시로 승격되고 인천 앞 바다는 경기만에서 인천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1994년 12월 26일 옹진군 섬 친구를 잃고 경기도에 남겨진 대부면이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중 어디로 갈지 주민투표를 한다. 시흥시와 안산시 선거운동원에 의하면 처음에는 시흥시 편입 여론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산시가 선거 하루 전 통장과 부녀회장들에게 적극적으로 운동을 펼쳤고, 선거 당일 통장들이 마을을 돌면서 ‘예산이 다른 시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안산에 찍을 것’을 적극 독려하여 3표차로 과반을 넘겼다고 한다. 만약 안산이 4표만 적게 나왔어도 과반 미달로 재투표를 할 수 있었다. 투표 결과는 안산 50%, 시흥 47%, 화성 3% 정도였다. 이를 근거로 1994년 12월 26일 대통령령 제14434호와 안산시 조례 제572호에 의거 화성군 반월면 일부와 옹진군 대부면 전체가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이때 경기도에서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아무 연관 없는 안산시를 끼워 넣은 것이 잘못이었고, 안산시도 도농복합시로 바꾸어 농어촌 대부면이 유지되는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했다. 즉, 1994년 말 경기도 대부면 행정구역 재편과 의견 수렴 주민투표는 잘못된 사례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첫째, 대부도와 인천과의 지리적인 면을 고려했다면 시흥시로 가야했다. 다음은 역사적인 면과 사강시장을 많이 이용했던 점, 농어촌의 경제적 공통점, 인근 섬과의 유대관계나 어업권 문제가 얽혀있는 풍도와 육도를 고려하였다면 화성군으로 가야 했다. 지역 대표들의 순간적인 오판(誤判)으로 매우 이질적(異質的)인 안산시에 편입된 것은 많은 문제 발생을 예견하고 있었다.
용역이나 전문가의 의견도 듣지 않고 주민투표에만 의존한 정책으로 대부도와 풍도 인근 섬 주민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불이익을 받으며 살고 있다. 대부도 유지들의 증언에 의하면 첫 번째 이유로 대부면에 경기도 땅 231만㎡(약 70만평)가 있기 때문에 대부도만 잔류시켰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부도와 풍도를 인천에 넘기면 평택항 항로가 인천시장 관할이 되기 때문이다. 해양도시 안산시와 경기도 바다의 핵심인 대부도와 풍도의 주인공은 주민이다. 이곳이 면지역이 되어 발전하도록 도지사. 시장, 시·도 및 국회의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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