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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살아 숨쉬는 섬 『대부도 지명 이야기』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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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 기자 chang4900@naver.com
입력 2025.11.06 17:07 수정 2025.11.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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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르고, 대부도는 역사의 주인공이었나?(중)晴境(청경) 金善喆(김선철)

김선철 안경사진1.jpg

전호에서 계속, 고려 제8대 현종(1009~1031) 때의 3, 2, 5, 12목 지도에서 양광도 광주목에 속했다. 대부도의 기록은 제7차 려몽전쟁(1255년 음9~1256년 음6) 때인 제23대 고종 43(1256) 인주(仁州, 인천) 소래산에서 대부도 별초군이 기습해 몽골군 100여 명을 물리쳤다는 것이 처음이다. 그로부터 15년후 몽골 제국의 5대 쿠빌라이 칸과 고려 24대 원종(1271)이 화친을 맺은 후, 신축일에 착량(窄梁)의 초소를 지키고 있던 몽고군이 대부도(大部島)에 들어가 주민들을 약탈하니 주민들의 원망이 심하였다. 고려사절요 권19 원종(元宗) 121월에 관노 숭겸 등이 반란을 도모하였을 때, 대부도 별초군이 몽고 병사 6명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수주(水州, 수원과 남양 지역) 부사 안열(安悅)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여 관직을 5품으로 올렸다고 한다. 이것으로 고려 말 대부도는 수주(水州)에 속했다는 것과 대부도 별초군은 많은 고통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5도 양계 행정구역-양광도 광주목(수주, 대부도, 착량, 풍도 등) 지명 지도.png
<고려 5도 양계 행정구역-양광도 광주목(수주, 대부도, 착량, 풍도) 지명 지도>

 

조선 초기 남양도호부 시기인 1413(태종 13)에는 읍치(邑治)가 남양에 있었고, 남양만의 대부도는 영종도, 영흥도, 덕적도 등과 함께 남양에 속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숙종(19) 때인 18세기 대부도에 7223,002명이 거주하던 자연촌에 대부도면이 설치되고 있었다고 한다. 대부도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목장 있었는데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4대 세종대왕 때 말 418필과 염전 4, 14대 선조 때 목자가 348, 숙종 3(1677)에는 제주도의 준마 68필을 대부도 목장에서 번식시켰다. 경기만 섬의 목장을 관리하는 감목관(監牧官)은 종6품으로 대부치소(大阜治所)는 지금의 대부파출소장 관사(官舍)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482년이 지난 고종 3218956월부터 18968월까지 1년간 23부제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인구분포와 생활권을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지역 편차가 큰 도()를 더 작게 나누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이때 경기 서남권의 안산, 수원, 남양 군들은 인천도호부로 이관되었다. 육지면에 속한 국화도, 제부도 등을 제외한 영흥도와 대부(大阜)의 부속 섬이 인천도호부에 편입되어, 대부도는 이때부터 남양과 인천이 동시 생활권이 되었을 것이다.

23부제를 갑자기 시행하여 제도와 행정구역의 급속한 변화로 혼선을 빚자, 1년 후인 고종 33189684지방 제도와 관제 개정에 관한 안건을 반포·시행하여 도제(道制)로 환원되었다. 이때 8도제를 보완하여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를 제외한 나머지 도()를 좌·우도 체제에서 남·북도로 분할한 13도제가 시행되었다. 이때 경기도 남양군 소속으로 영종도, 영흥도, 덕적도 등과 함께 남양군에 환원된 것이다.

1869년 조선 행정구역-인천부(남양, 시흥, 안산, 수원, 풍도 등) 지명  지도.png
<1869년 조선 행정구역-인천부(남양, 시흥, 안산, 수원, 풍도 등) 지명 지도>

 

일제강점기인 191431일에 부··면 행정구역을 통폐합 개편하였는데, 남양군 대부분이 수원군에 편입되고 대부면과 영흥면이 부천군에 이관되었다. 인천을 제물포라 하는데 이곳은 조그만 어항(漁港) 일대를 가리키던 명칭이다. 인천 개항장 일대인 현재의 중구와 동구 지역을 흡수하여 인천부에 잔류시키고, 그 외 주안면, 다주면, 소래면 등과 기타 도서지역인 영종면, 용유면, 덕적면 등이 부천군에 편제되었다. 부천군(富川郡)은 부평의 부()와 인천의 천()을 딴 것으로 대부도는 신설 부천군 소속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초는 양광도 광주목, 고려말은 수주(水州), 조선초는 남양도호부, 1895년은 인천도호부, 1896년은 경기도 남양군, 일제 강점기인 1914년은 경기도 부천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바다 명칭도 양광만수주만남양만인천만경기만으로 바뀌고, 이 흐름에 맞추어 대부주민들의 생활양식도 조금씩 변해갔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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