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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살아 숨쉬는 섬 『대부도 지명 이야기』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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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 기자 chang4900@naver.com
입력 2025.11.03 11:43 수정 2025.11.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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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르고, 대부도는 역사의 주인공이었나?(상)


김선철 전 대남초 교장.jpg

晴境(청경) 金善喆(김선철) 

대부도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속한 나라가 바뀌었고, 산업혁명 이후 근현대에는 소속 시(()4번이나 바뀌었다. 소속된 행정구역(行政區域)이 어디냐에 따라 지역의 위상이 달라지고, 통신과 산업, 교육과 의료, 세금 등이 달라진다. 현재 대부도는 엄연히 농어촌(農漁村)인데 도시(都市) ()지역이 되어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 그래서 대부도의 행정구역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대부도가 어떤 나라에 속해 왔는지 알아야 한다. 과연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살면서 부족(部族) 단위로 생활했을 것인가? 그 근거로 흘곶과 중부흥, 말부흥, 구봉도 뒷산 언덕, 불도 등의 패총에서 마제석기와 신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20115월 대부동주민센터 우회도로 공사 중 대부북동 198-4번지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움집터와 돌화살, 돌도끼, 그물추, 갈돌과 갈판, 빗살무늬토기 등의 유적이 발굴됐다. 이러한 유물로 대부도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어로(漁撈) 활동 외에도 사냥과 원시(元始)농업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회]_대부도가 속했던 나라와 행정구역의 변화 지도(남양부, 부천군, 옹진군, 안산시).png
<대부도가 속했던 나라와 행정구역의 변화 지도(남양부, 부천군, 옹진군, 안산시)>

 

고대국가인 고조선(기원전 2333~108)을 거쳐 삼한시대(三韓時代)는 마한(馬韓, 서기전 1~3세기) 지역으로 한강 유역의 목지국(目支國)이었다. 이어 삼국시대에는 온조왕부터 개로왕까지(한성시대, 기원전 18~475) 백제에 속했다. 그후 340년 고구려의 18대 고국원왕(331~371)이 남진정책을 시작하면서 20대 장수왕(394~491) 때인 475년부터 고구려에 속했다가 23대 안원왕 사망 후 왕위 계승 분쟁으로 24대 양원왕(545~559) 때 내정(內政)이 어지러웠다. 이를 틈타 백제 26대 성왕(504?~554)과 신라 24대 진흥왕(534~576)은 나제동맹군을 결성하고, 551년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수복(收復)하면서 백제 땅이 된다. 2년 후인 553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신라 소속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말인 898년에 궁예가 경기도 일대를 평정하고, 901년 후고구려(高麗, 901~904)가 송악(宋岳)에 도읍을 두었다가 904년 마진(摩震, 904~911)911년 태봉(泰封, 911~918)으로 국호를 바꾼 후 철원에 도읍을 두었다. 궁예가 후삼국의 영토 절반을 차지하였으나, 폭정으로 태조 왕건(877~943)이 역성(易姓)혁명으로 918년 고려를 창건한 후, 1392년 조선이 개국할 때까지 474년간 고려 땅이 된다. 고려시대에 대부도와 선감도라는 지명이 문헌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행정단위를 나타내는 대부도(大部島, 大府道)의 부(, )거느릴 부를 의미한다. 13세기 원종 12년에는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여 대부도 별초군이 소래산의 몽고군 100여명을 격퇴한 기록이 있어 대부도가 독진(獨鎭)으로 독자적인 통치체제를 갖추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나라가 바뀌면서 대부도에도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을까? 희로애락(喜怒哀樂) 삶의 역사 그 자체였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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