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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 대부도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 대부도
필자가 2005년 대남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을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 학교 특성화 교육을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이었다. 이 학교는 폐교(閉校) 대상의 소규모 학교라 예산지원이 어려웠다. 학교 정문 앞에 넓게 펼쳐진 갯벌의 다양한 동물과 염생식물, 그리고 바닷물을 이용하면 어느 학교도 따라 올 수 없는 독보적인 특성화 학교가 되는 것이다. 특성화 교육이 활성화되면 폐교(閉校) 대상 학교에 학생이 증가할 것으로 생각했다.
2006년 1월 안산시청과 해양수산부로부터 학교 앞 갯벌 3,300㎡에 공유수면점·사용허가를 받아 학교염전을 완성하고, 갯벌·생태학습장도 운영하여 국내는 물론 일본의 람사르재팬과 중국의 차이나국제습지센터에서 전문가와 학생까지 찾아오는 ‘갯벌·염전체험장’이 되었다. 그 결과 2008년부터 대남 학구(學區)로 이사도 오고 학생 수도 증가하였다.
“섬마을 선생님” 노래 2절 첫 구절이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로 시작한다. 해당화가 피는 5월은 농어촌(農漁村) 논밭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내기 하려면 비가 내려야 한다. 농부들의 애간장을 태우지 않으려면 구름이 쉬어가야 하는데, 이경재 작사자는 왜 “구름이 쫓겨 가는 섬마을”이라 하였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먹구름이 염전 위로 몰려오면, 덧물판(염도 17% 내외)과 결정지(염도 26% 내외) 바닥에 얇게 깔린 많은 함수를 모아 해주(海宙; 鹹水桶)에 집어넣어야 한다. 햇빛이 나면 결정지(結晶地) 바닥을 고무래로 빗물을 깨끗이 훔쳐낸 후 함수(鹹水)를 끌어 올려 염전 바닥에 얕게 깔아 다시 증발시켜 천일염을 생산하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선생님들은 수업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교염전(學校鹽田) 운영을 교장이 직접(直接)하였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면’ 함수 관리가 너무나 힘이 들었고 천일염 생산이나 염전 체험에 어려움이 컸다. 이런 과정에서 그 노랫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1960~70년대 대부도에 얼마나 많은 염전이 있었을까? 대부북동에는 구봉도의 대봉·구봉·서호 염전, 상동의 대흥·상동·시화·태흥 염전, 대부동동에는 까치섬의 용화·대동 염전, 솔따배기의 동주·천일 염전, 신당리의 대종·대창 염전, 선감도의 경기염전, 탄도염전, 대부남동에는 어지현(魚池峴)의 창하염전, 고랫부리의 강거래염전, 긴장불이의 대남·이화·금화 염전, 흥성리의 천신·대성·만성·홍성 염전, 샛터의 중앙염전, 중부흥의 금당·동일·동립·한신·대흥·중부흥·백화 염전, 말부흥의 대부·대호·광량·유성 염전 등 36개가 있었다. 그중 대남초등학교 학구에만 21개가 있었다.
요즈음은 기계화되어 예전보다 힘이 적게 들지만, 철(鐵)로 된 기계(機械)나 도구(道具)들도 쉽게 망가진다. 그리고 농사일에 비하여 염전 작업은 너무나 힘들었다. 1960년대 중후반까지 흘곶에서 마포나루까지 소금 돛배를 운행하였던 이구영 소금 돛배 선장에 의하면 “소금값이 쌀보다 2~3배 더 높았고, 그 귀한 소금을 많이 생산하려면 구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염부들은 소금이 함수의 표면(表面)부터 하얗게 만들어 짐으로 ‘소금꽃이 핀다.’ ‘소금이 온다’ 등의 말을 한다. 1965년 5월 이경재 작사자 일행이 대부도를 다녀간 후 학교 주변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鹽夫)의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한 모습을 떠올리며 노랫말을 지었을 것이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에서 이경재 작사자의 예리하고 뛰어난 통찰력과 더불어 염부(鹽夫)의 노고(勞苦)를 덜어 주려는 배려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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