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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晴境 김선철

2012년 2월말 퇴직을 하고 2013년 3월부터 안산시좋은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응모하여 2017년까지 6년간 ‘대부도 마을 이야기 조사’와 ‘대부도 옛 지명 지도 그리기’를 추진하던 중 대부도 출신 신정웅 교장 선생님과 정성구 사진 클럽 회장의 도움과 자문을 받게 되었다. 신(申) 교장은 대부초등학교와 인천(仁川; 京仁)교육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동초등학교에 근무하였고 대부도의 평산(平山) 신씨(申氏) 집성촌(集姓村) 행사(行祀)에 많이 다녔다. 정 회장은 대부도 구석구석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래서 두 분은 이 섬의 지리(地理)에 누구보다 밝고 인맥(人脈)도 매우 넓었다.
신 교장 선생님께서 섬마을 선생님 노래 배경지인 대남초등학교는 “대부도 관문인 진두(津頭)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하여 근무를 희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요즈음의 대부도 남3리는 시화방조제를 통하여 언제든지 육지를 오갈 수 있지만, 1960년대 대남초등학교는 교통 사정이 너무 나빠 육지(陸地)에서 정말 오가기 힘든 머나먼 곳이었다.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태어났을 총각 선생님들이 대남초등학교로 발령받아 출렁이는 동력목선(動力木船)을 타고, 인천부두→옹진군 영흥도→화성 마산포→대부도 진두선창까지 2~3시간 걸려야 도착했다.
그리고 또다시 진두(津頭)에서 남3리(南三里)까지 가려면 일용(日用)할 생활용품(生活用品)을 챙겨서, 진두선창→신당리→성황당→분지천→고유지→공마루→상동→왕좌재→긴장골→샛터마을→용두고개→용머리→대남초등학교까지 2시간(7km)이상을 걸어야 도착한다. 이때 대남초등학교에 근무한 총각 선생님이 겪어야 할 일상(日常)의 어려움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상상만 해도 아찔한데, 3월 첫 발령을 받아 대남초등학교에 와서 육지에 다녀오려면 2시간을 걸어가서, 배 타기를 2~3시간, 뱃멀미는 무섭지, 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심하면 동력목선(動力木船)이 운항하지 않으니, 방학이 아니면 육지의 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인천에 도착해서 서울 집에 가려면 하루에 몇 대밖에 없는 화물열차(貨物列車)에 달린 객차(客車)를 타고 가면 또 하루해가 저문다. 경기도 다른 곳이 집인 선생님들은 화성군(華城郡) 마산포(馬山浦)에 내려 사강(송산)까지 걸어가 하루에 몇 대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수원에 도착해 서울이나 고향집으로 갔다고 한다. 육지(陸地)에 도착해서도 왕복(往復) 이틀이나 걸리니 선생님들은 발령받은 지 1년이 되는 2월 말이면 섬을 벗어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1960~70년대 대남초등학교 앨범의 학구도(學區圖)에 대부도 진두 선창에서 32km 인천 연안부두(沿岸埠頭)와 화성·시흥이 보인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인천항과 화성시를 통하여 인천, 서울 그리고 수도권 여러 지역으로 오갔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선생님들이 얼마나 육지의 고향 집이 그리웠으면 화성과 시흥 그리고 인천까지 학구도에 그려 넣어 ‘철새 따라왔다가 철새처럼 육지학교로 가고 싶었을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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