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총각 선생님晴境 김선철

‘섬마을 선생님’ 노래의 주인공 서강훈 선생님은 노년(老年)에 대남초등학교 건너편 중부흥 느릿뿌리 끝 바닷가에 사셨다. 2018년부터 2020년 8월 25일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가 세워질 때까지 3년간 다섯 번 정도 만나 선생님의 고향과 행적(行蹟)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1958년 대부초등학교부터 1961년 대남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섬 생활이 너무나 갑갑하여 서울 건국대학교에 합격하여 등록금도 납부하였으나, 대남 초대 정관호 교장 선생님이 교사가 부족하다며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 벗어나는 길은 입대(入隊)가 최선이라는 말을 듣고 논산훈련소에 입소(入所)한다. 선생님은 군경유가족에 외동아들이라 군 면제자(免除者)여서 뒷돈을 주고 입대하였단다. 논산훈련소에서 특수병과에 차출되어 훈련을 받고 서울 자대(自隊)에 배치된 후 학업도 병행하여 1964년 건국대 법정대 행정학과를 졸업한다.
서울의 부대에 근무할 당시 하는 일이 사회악을 뿌리 뽑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교사가 되려고 대부도로 왔으나, 모처(某處)의 지시로 인천으로 붙들려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언론계에 종사하게 된다.
그 와중에 대부도 중부흥 수영목의 이춘자 섬색시가 인천 박문여고를 졸업하면서 파독 간호사로 가게 되어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부유한 집안이라 돈을 벌려고 독일에 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서강훈 어머니께 연락하여 총각 선생님과 섬색시가 결혼을 한다. 총각 선생님이 여고(女高)를 갓 졸업한 열아홉 섬색시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독일 간호사는 집안 사촌이 대신 갔다고 한다.
선생님은 1937년에 서울 정동 근처에서 태어나 1944년 부친(父親)의 변고(變故)로 대부도에 온 후, 1945년 광복 후 서울로 갔다가 6.26 사변 때 대부도로 피난 온다. 전쟁이 끝나자 다시 서울로 되돌아가 1955년 종로 청운중학교 졸업 후 인천사범학교에 진학하여 1958년 졸업한다. 대부도에 발령받아 1958년 대부초등학교와 1960년 6월 대남분교장을 거쳐 1961년 대남초등학교에 근무한다. 1961년 말 논산훈련소 특수병과 요원 훈련, 서울 자대(自隊) 배치 및 대학교 학업 병행(竝行), 1961~1963년 5.16 군사정변기를 거쳐, 1964년 건국대학교 졸업 후 대부도에 와서 교사로 복직하려 했으나 인천에서 특수 임무 수행 후 언론인으로 일생을 보낸다. 말년(末年)에는 일제 강점기에 사 놓은 대부도 바닷가 산에 집을 짓고 살았다. 총각 선생님은 대부도와 서울을 몇 번씩 오갔는가? 진정 ‘서울 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총각 선생님 노래의 주인공임이 분명하다. 2025년 5월 3일 느릿뿌리 집에서 이춘자 섬색시를 만났는데 인천에 살 때 박형원, 탁용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고, 요즈음도 원주에 사는 양추자 섬색시를 자주 만난다고 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