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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부지도로 본 대부도 지명 이야기(하)晴境(청경) 김선철

이전호에서 계속 흘곶동(訖串洞)은 섬의 가장 끝 곶이 있는 마을, 영전동(營田洞)은 농사짓기 좋은 마을, 화불리(禾不里)는 벼농사가 잘 안되는 마을, 사동(寺洞)은 절(佛)이 있는 마을, 미동(尾洞)은 섬의 가장 뒤쪽에 있는 마을, 종현동(鍾懸洞)은 종을 매달아 알렸던 마을, 용두포(舂頭浦)는 방아머리를 닮은 포구, 말부흥의 부항포(浮缸浦)는 항아리가 물에 뜬 형상을 한 포구, 선감도(仙甘島)는 물이 좋아 신선이 내려와 목욕한 섬마을. 불도(佛島)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셨던 섬마을, 탄매도(炭埋島)는 숯이 묻혀 있는 섬마을이다.
위(上)의 옛 대부지도에 서울 삼각산(북한산)이 그려져 있다. 2016년 시화조력발전소 문화관 안산문화관광해설사 안내 부스에 근무할 때였다. 매우 청명한 날 나래휴게소 달 전망대에 올라갔는데 관광객 한 분이 북쪽에 멀리 보이는 산이 서울의 북한산 같다고 하였다.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옛 지도의 삼각산이었다. 대부도에서 서울이 보이다니? 대부지도(大阜地圖)를 그린 옛 선인들의 관찰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대부도와 맞닿은 북쪽에는 현재 대부도가 속해있는 안산과 인천, 부평, 멀리 송(산)도, 강화도, 월미도,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팔미도가 보인다. 우음도 외에는 거리가 표시가 없어 남양부와 다른 관청에서 관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개경이나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의 길잡이가 된 쌍섬인 제1주차장의 나래휴게소와 앞의 큰가리기섬, 제2주차장과 안산행 버스 정류장이 있는 작은가리기섬이 있다. 조력발전소와 달전망대, 나래휴게소는 조력발전소를 만들며 끌어올린 토석(土石)으로 조성한 것이다.
서쪽으로는 구봉도 낙조전망대 오른편에 물살이 아주 거친 변도(弁島, 고깔섬)가 보인다. 동쪽으로는 영전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수산물을 채취하던 외지섬이 있고, 대부도가 속해있었던 남양부와 20리 뱃길의 우음도 및 남양봉수(南陽烽燧)가 보인다. 그리고 대부도지계사복(大阜島地界司僕) 인계남양(人係南陽) 신속본도(新屬本島)는 대부도의 사람은 남양에 속하고 섬은 새로 지정한 사복시 관할의 목장이라는 것이다.
아래(下) 옛지도의 동쪽에는 간조 때 학(鶴)이 남양에서 대부도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따라 건넜다는 학지(鶴之)가 표시된 마산진수로20리와 화량진수로30리가 있다. 선감도(仙甘島), 불도(佛島), 탄매도(炭埋島)는 대부도 사복시 관할이고, 탄도는 무인호(無人戶)로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남동쪽에는 소교동(小橋洞) 안고렴과 제부도(濟飛島), 돌이도(突伊島)는 남양에 속(屬南陽)한다. 남(南)쪽 풍도(楓島)는 인계수원신속본도(人係水原新屬本島), 지계사복수로오십리(地係司僕水路五十里), 양선하정두류(洋船下碇逗遛)로 이를 풀이하면 ‘사람은 새로 소속된 수원의 본섬에 속하고, 섬은 대부도 사복시 관할로 뱃길 50리이며, 풍도와 같이 입파도(立岜島)에도 서양 배가 닻을 내리고 머물렀다. 구화도동역(九花島洞役) 급조운호송(及漕運護送) 병부풍도(幷付楓島) 수로40리(水路四十里)는 국화도 마을은 풍도와 함께 조운호송에 노동을 제공하고 뱃길 40리에 있다. 그리고 서(西)쪽의 선재도(仙才島) 본계사복(本係司僕) 수로20리(水路二十里)는 선재도는 대부도 감목관 관할로 뱃길이 20리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인근섬은 대부도 감목관 관할이였고,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의 삼각산뿐만 아니라 작은 섬과 항로(航路)의 거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부도 주변의 바다가 중요함을 알리는 것이다. 과거(過去)에 중요한 바다가 지금은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더욱더 중요하다. 이 지도는 후손(後孫)에게 역사를 잊지 않도록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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